내가 살고자 하는 대로, 아이들도 그리 살기를
'나는 주변을 따듯하게 하고 싶은 사람이다.'
만날 아이들이 자기 각자 자기의 주변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내가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부정적이라, 그렇게 잘 안되는 것도 같아요. 최악을 생각하거나, 힘든 아이들만 눈과 마음에 많이 들어와서 힘들때가 있어요.
저는 우리반 아이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그래서 학급에서 동전 모으기활동을 1년 동안 지속적으로 했어요. 관련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기도 하고, 관련 영상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도움의 활동을 해요.
학교에서 저마다의 외로움을 넘는 첫 걸음은, 분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삶과 아이들의 삶의 일치예요.
왜냐구요? 나의 삶은 결국 학생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이예요. 나는 그렇게 믿어요.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따뜻함을 기대한다면, 우리반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따듯함이 있도록 알게모르게 애쓰겠지요. 도덕 교과의 ‘서로 돕는 우리’ 단원에 더 마음이 갈 것입니다. 학급운영에 이런 의도가 반영될거예요.
만약 교사의 삶에 대한 가치가 수업과 연결된다면 어떨까요?
하루에도 몇 시간씩 하는 수업에서 나의 가치가 드러난다면. 아이들과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받는 수업에 그것이 반영된다면. 나의 삶과 수업이 연결된다면, 이는 자신과 교직의 정체성이 연결되는 것 아닐까요. 그런 수업이야말로 깊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듯 해 보이는 모습이 아닌, 두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나는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아이들도 행복할 것 같아요. 사소한 일에도 행복과 감사를 갖는 행복. 그래서 우리반 이름을 ‘감사랑’반으로 정했어요. 감사와 사랑. 그런데 한편으로 아이들이 내 기준 안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혹시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나는 다 잘하고 싶은 사람이다.'
의욕이 많아요. 그만큼 과다할때면 포기해버리거나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하고. 학생일 때는 이런 성향이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발현되었는데, 교사가 되니깐 학급이 내 열정만큼 안되어서 절망하기도 하고… 아직 적정선을 잘 못잡겠어요.
'나는 거리를 두는 사람이다.'
그만큼 아이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어려워요. 아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겠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저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려고 해요.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고, 반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대하려는 마음. 부장이 되고 업무가 많아져서일까? 부담되서일까?
학교에서 저마다의 외로움을 넘는 첫 걸음은, 분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면의 이야기와 안전한 공동체 속 대화의 일치예요.
학교란 적당히 선을 그어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교육 공동체라고 하지만, 여기도 결국 ‘사회생활'을 하는 곳일까요. 가령 내가 6학년 담임을 맡고 싶어도 일단은 하기 싫은 척을 해야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학급에 문제가 생길 때 ‘너가 한다고 했잖아’라는 메세지가 되돌아오기 십상입니다. 성과급에서도 불리하지요. 동학년 교사들은 얼핏 친해보이지만, 사실 적당한 선에서 대화의 주제가 형성됩니다. 관리자 이야기, 학교의 크고 작은 사건들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 정도.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엔 어색해요. 가르침의 철학을 이야기해보았던가? 교육관에 관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의 빈 곳을 보일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면.
교사로서 가지고 있는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 앞에 설 때 두렵다는 말을 들어주면 좋겠어요. 가치와 철학의 막막함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 안전한 곳. 속마음을 보일까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생각하는 그대로 말해도 괜찮은 모임.
내면의 이야기를 나눌 안전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는
가르침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이루는 일에서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