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잔인한 말을 계속해요
학기 초에는 참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닌데, 요즘 부쩍 이상해요.
잔인한 말을 수업 시간에 해요.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렸어요. 화면에서 귀신같은 것이 기어 나오는 B의 그림. 표현력이 좋아서 그 장면을 자세하게 그린 거예요. 섬뜩한 그림이었어요.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사회 시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지역 사회의 문제를 발표하는데, "이 사람이 누구를 죽였어요. 칼로 찔렀어요. 지역에서 일어났으니 지역 사회의 문제 맞죠”라고 하는 거예요. 나름의 논리는 있어요. 그런데 생각이 건전하질 못해요. B는 그런 자기 말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요. 그러면서도 이른바 ‘관종(관심종자)’ 짓을 하는 거죠. 잔인하고 이상한 말로 관심을 계속 받고 싶어 해요. 아마 제 생각에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이 채우지 못하는 욕구를 그런 방법으로 분출한다 싶어요. 수업 시간에 잔인한 말, 이상한 농담을 하면서 관심을 얻으려 하는 거죠.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찍소리도 못해요
어느 날은 친구랑 몸싸움을 했어요. “나는 우리 반 4짱이고, 너는 10짱이야!”, “아니야, 내가 4짱이고 너는 10짱이야” 서로가 서열이 높다고 주장하며 B와 다른 친구가 주먹다짐을 한 거예요. 우리 반에 몇 되지도 않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10짱이면 사실 엄청 약한 거죠. 그러니 힘이 센 아이가 뭐라고 말을 하면 B는 말을 못 해요. 친구들 사이에서 억눌리는 것 같아요.
학급의 친구 관계를 살펴봐요. 여자아이들은 그룹에 나뉘어 끼리끼리 노는 반면 그 안에서의 서열은 크게 도드라지지는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남자애들은 모두 친하게 놀면서도, 힘에 의한 권력이 보여요. 대단한 권력이 아니더라도 자기들 나름의 무언가가 있어요. 놀이에 끼워주고 말고의 결정권. 다른 친구들의 주목을 받는 인기. 보통은 욕을 사용하고, 외적으로 힘이 세 보이고, 형들과 친한 관계. 이런 것들이 서열을 결정하는 것 같아요.
까딱하면 B와 관계가 틀어질까 봐 걱정이 돼요
이런 태도를 허용적으로 보는 교사라면 모르겠어요. 저는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 기분이 팍 나빠지고, 곧잘 정색하게 되요. B가 문제 행동을 보이면, “얘들아, (B의 저런 행동이) 재밋니? (B야) 너 정말 어리구나. 그래서 지금 아기 같은 행동을 하는 거야”라고 면박을 주게 돼요. 참아보기도 하는데 수업 시간 마다 그렇게 행동을 하니… 저도 이 아이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려워요. 이러다 자칫 B랑 관계가 틀어질까 봐 두려워요. 이후에는 내가 하는 말마다 반항할까 봐 걱정이죠. 오늘 학교 오기가 싫었어요.
분위기가 중요해요
:공동체적인 문제로 인식하기
“작년에 (학급의 아이들에게) 모여서 오픈할 때가 많았어요. ‘나는 너희가 그런 행동을 할 때 너무 힘들어’라는 말이요. 내 감정을 정리하여 표현하기조차 쉽지 않았지만, 자꾸 해봤어요. 4학년을 맡고 계시니 긴 시간은 어려울 수 있어요. 6학년 같은 고학년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40분 내내 집중이 되지요. 4학년은 40분 동안 듣는 것 자체가 잘 안될 수 있다는 걸 고려하여 짧은 시간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하여 이야기하는 것도 좋겠어요.”
“처음에는 효과가 없을 수 있어요. 지속해서 하다 보면 조금씩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요.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이들도 생기고. 중요한 것은 B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다른 아이들이 알게끔 하는 거예요. ‘저 행동은 옳지 못하거나. 저러면 안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학급 공동체의 지배적인 분위기가 되도록 하는 거예요.”
다행히도 B의 문제 행동은 이제 막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그것이 다른 아이들에게 확산되는 상황은 아니에요. 그러니 변화의 가능성이 있어요. 학급의 분위기를 긍정적인 쪽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따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B의 행동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이 아이를 집중해서 지도할 기회가 있습니다.
화를 내도 괜찮은 걸까?
:분노와 엄격함의 차이
“아이들의 행동에 화가 날 때 정색하고 말하게 돼요. ‘너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 하는구나!’라며 비꼬며 말하게 돼요. 그렇게 하여 이 아이를 눌러버리려는 마음”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감정을 싣지 않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고혈압으로 쓰러질 것 같은.. 이 아이나 학급은 둘째 치고, 내가 너무 힘들어요. 감정을 실어서 말하지 않아야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그게 참 어려워요.”
“감정을 실어서 화를 내면 그 뒤에 기분이 찝찝해요. 화를 내고 곧바로 수업을 이어가야 하는 그 상황이 너무 싫은 거예요. 하필 활동이 재미있는 내용이거나 PPT에 놈당이 있는 상황이면 더더욱! 화를 냈다가 다시 웃으면서 수업 분위기를 재밌게 이끌어야 하는 순간이 너무 싫은 거죠."
아이들을 분노하며 대하는 것과 엄격하게 대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생활지도를 하다 보면 화를 내는 방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조곤조곤 설명하는 방법이 아이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생각하게 한다면, 화를 내는 방법은 그것이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직관적으로 느끼게 하지요. 잘못에 대하여 감각적으로 깨닫는 것도 필요해요.
그러나 화에 교사의 감정이 실려 있으면 위험해요. 아이들도 인격체이가 때문에 선생님이 나를 위하여 화를 내는지, 자기감정을 폭발 시켜 분노하는지 구별을 합니다. 감정이 섞인 화가 반복되면 아이는 마음에 상처를 얻거나 분노를 똑같이 되돌려줘요. 교사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상태예요. 그렇게 되면 그 아이를 가르칠 기회를 잃게 됩니다. 교사의 전문성은 배움의 기회를 포착하는 데 있어요. 문제 행동을 볼 때 그저 인간적인 분노로 반응하는 건 일반인의 모습이죠.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에게 배움의 기회를 찾아내고,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여 성숙으로 이끄는 것이 초등교사의 전문성입니다.
핵심은 엄격함이에요. 부드럽되 엄격하게 반응하는 거죠. 화가 아닌 부드러운 반응은 아이와 교사 모두의 마음을 지켜줍니다. 상처를 남기지 않고 배움의 관계를 유지해줘요. 단,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과는 달라요. 온유하게 반응하되 기준을 양보하지 않는 엄격함을 가져야 해요. 적절한 울타리를 아이와 공유하고 거기로부터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엄격함. 일관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것이 중요합니다.
내 눈의 주인은 나!
:바르게 반응하는 아이를 주목하기
“반 아이들 중에 잘하는 아이보다는 못하는 아이가 먼저 눈에 들어와요. 한 아이에게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잘 보이고요.”
“수업을 하다 보면 집중하여 잘 참여하는 아이보다는 떠들거나 딴짓하는 아이가 눈에 딱 들어오죠. 잘 참여하는 아이를 칭찬하는 것보다 떠드는 아이를 지적하는 게 더 쉬워요.”
학급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인상을 구기지만, 그 반대인 아이들도 분명 있지요. 수업 시간에 그림처럼 앉아서 나를 주목해주는 아이. 싸우는 친구를 보며 선생님과 같은 마음으로 답답해하는 아이. 부탁하지 않아도 당연한 듯 짝을 도와주는 아이. B와 같은 아이에 집중하느라 놓치고 있는, 교사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들입니다. ‘우리 반에는 B도 있지만, 이렇게 고마운 아이도 있어’라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가지면 어떨까요.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을 의식적으로 주목하고 바라봐요.
성숙한 아이들을 학급 공동체의 중심에 세워주세요. 또래 관계에서 모범적인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거지요. 그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문제 상황에서 옳은 말을 하는 아이에게 교사가 피드백해주는 거예요. 그 아이의 말을 받아서 교사가 다른 아이들에게 전달해줘요. 이런 모습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아, 이 친구의 이런 말이 의미 있구나’라는 메시지를 얻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학급에서 모두가 대화하는 중에 그 아이의 말에 권위를 부여해줄 수 있어요. 그를 중심으로 공동체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