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이 너무나 하앴다.
임종 전 병원의 할아버지를 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나이에 돌아가셨다. 마지막 몇 주는 병원에 계셨는데, 집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거길 못 가게 하였다. 딱 한번 거기를 갔다. 어스름히 땅거미 지던 창밖 풍경과 대비되던 중환자실의 전등빛. 코와 팔에 연결되어 있던 십 수가지의 하얗고 노란 호스. 새하얀 환자복을 입고 침상에 뉘어져 있던 할아버지.
발이 너무나 하앴다. 핏기없이 너무나 하얘서 마치 이 세상의 하얀 색이 아닌 것만 같은 발. 온기는 1도 없어 만지기라도 하면 온 세상이 얼어버릴 것같은, 할아버지의 발. 담배냄새가 싫어서 옆 집에 살면서도 가까이 가지 않으려 했던 할아버지를 다음으로 본 건, 며칠 뒤 장례식장 영정 사진 속에서였다.
2.
문자와 함께한 출근길이었구나.
성은쌤의 첫 출근에는 할아버지로부터의 응원과 지지가 든든하게 동행하였구나. 학교를 처음 옮겨 본, 정신없던 나의 눈에도 신규발령 인사를 하는 성은쌤에게 가득한 긴장과 의지가 보였다. 좋으면서도 낯설고, 기대하면서도 긴장하는 그의 첫 출근길을 할아버지께서 손잡고 걸어주셨구나. 애정과 염려가 가득 담긴 문자와 함께.
3.
나도 참 헛똑똑이다.
네 살 이수는 참 이쁘다. 이뻤던 세 살의 이수보다 더 이쁘다. 이뻤던 두 살의 이수보다 훨씬 더 이쁘다. 아직 아빠로의 삶을 산지 몇년 되지 않았지만, 여태껏 가장 잘한 일은 이수를 얻은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어제오늘 이수가 수족구 증세를 보여 부모님 댁으로 격리(!)조치 되었다. 둘째 이현이에게 옮으면 안되니, 일주일은 거기에서 지내야 한다. 지금 옆에 없는 이수가 너무나 보고 싶다. 그 앙증맞는 웃음이 그립고 친전한 춤사위가 생각나 마음이 아리다.
그런데 이수와 막상 생활을 함께하다보면 이 아이를 주목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해야 할 일이 마음이 가 있기도 하고, 생각없이 핸드폰에 눈을 빼앗기기도. 나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해 힘들어하기도 한다.
함께 있을 때는 온전히 함께하지 못하면서, 멀리 있을 때는 함께함을 그리워하는 이 미련함이라니. 헛똑똑이다. 헛똑똑의 삶이다.